아이들에게 최고의 스타, 무대 위에 선 다문화 배우들

February 19, 2016

다문화극단 샐러드 ‘박경주’ 대표

 

 

“다문화라는 말로~우릴 부르지 말아요~”

 

지난해 12월 11일, 다문화 극단 ‘샐러드’의 뮤지컬 공연 현장. 가녀린 체구를 가진 이주민 배우의 목소리가 공연장 안을 울렸다. 다문화 극단 샐러드가 제작한 뮤지컬 ‘아라와 찌민’에 등장하는 이주민 배우들은 어눌한 억양에도 무리 없이 한국어 대사를 소화했다. 긴 호흡의 노래도 막힘이 없었다. 관객들의 시선이 배우를 따라 저절로 움직였다.

 

“문화다원주의를 ‘샐러드 보울(Salad Bowl·단지 섞여 살 뿐인 사회)’이라고 표현해요. 샐러드 보울에 담긴 샐러드가 각각 고유한 모습을 유지하면서 섞으면 맛있는 샐러드가 되는 것처럼, 다양한 인종 및 민족들이 각기 특성을 유지하는 것을 말하죠. 이러한 가치를 담아 극단 샐러드 이름을 지었습니다.”

 

극단 샐러드의 박경주 대표(48)가 입을 열었다. 그는 20년 가까이 이주민 문제에 관심을 두고 방송과 예술, 사회적 기업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한 사회적 예술가다. 2005년 인터넷 다국어 대안언론으로 시작해, 2009년 다문화 방송국 샐러드 TV를 진행하는 등 다문화 인식개선을 위해 밀착취재를 해온 언론인이기도 하다. 뮤지컬 대본, 연출, 연습 지도는 물론 공연에 나오는 모든 곡을 작사하는 역할도 오롯이 박 대표의 몫이다. 무대 위에 이주민 배우들을 세워 그들의 자립을 돕는 것이 사회적기업인 극단 샐러드의 비전. 그는 “당장의 수익보다는 되도록 이주민 배우가 모든 걸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면서 “함께 노력하는 단원들이 있어 어려워도 힘이 되고 보람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극단 샐러드는 국내 이주민의 고용 창출을 인정받아 2014년 5월 노동부 사회적기업 인증을 취득했다.

 

난 해 12월 11일, 신한아트홀에서 공연된 다문화 가족 뮤지컬 <아라와 찌민>

 

유럽에서 목격한 인종주의에 충격, 이주노동자 위한 방송국 세워 

 

한국인인 그가 다문화 극단을 세우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박 대표는 1993년 독일 유학 생활을 떠올렸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에게 신성처럼 여겨졌던 유럽 예술 현장. 현장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독일의 외국인 혐오주의자 ‘네오나치’들의 인종 차별로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그 역시 ‘아시아’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길거리에서 욕을 듣기도 했다. 지역 한인들은 저녁 7시 이후로는 지하철을 타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만큼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팽배한 상황이었다.

 

차별로 점철된 유럽 예술의 민낯은 한국으로 귀국한 뒤에도 그에게 여진으로 남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 생활의 고충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리는 방송을 본 그는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불쌍하다는 시선만 나오고 밀착취재도 없었던 그 방송이 싫었어요. 일단 프로젝트처럼 해보잔 생각에 이주 노동자 방송국을 만들었는데 방문자가 정말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려움도 많았다. 본래 예술가인 그에게 방송 경영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체를 운영하기에 필요한 자본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다국어 8개로 방송한 샐러드 TV 한 달 운영비가 어마어마했어요. 이주민 편집자 8명에게 번역비를 줬는데 나중엔 감당이 안됐어요. 아무도 관심도 없었고요. 이거 정말 안 되겠다 싶어서 그만뒀죠. 대신 취재했던 경험을 극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미제(未濟)로 남은 이주여성 사망 사건을 연극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대본을 써내려갔죠.”

 

아이들에게 최고의 스타, 무대 위 다문화 배우들의 활약

 

박 대표는 2009년부터 문화 콘텐츠 제작에 눈을 돌렸다. 아이들도 함께 볼 수 있는 콘텐츠를 고민하다가 2011년부터 다문화를 주제로 한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의 재능과 뜻을 알아본 신한은행은 선뜻 뮤지컬 후원에 동참했다.

 

극단샐러드 박경주(48)대표(이하 사진 제공:박창현 사진작가)

 

“2010년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예술 수업을 할 때였어요. 수업 도중에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다문화 학생들, 체육관으로 모이세요.’ 라고 나오는 거예요. ‘다문화 학생’이라는 용어로 학생들을 구별 짓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서 그 때의 경험으로 노래 ‘다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뮤지컬은 지난 5년간 3만 명의 관객을 만났다. 입소문이 나면서 학교에서 아예 샐러드 공연을 보러 오기도 했다. 교육부에서 다문화인식개선사업의 일환으로 각 학교에 보낸 기금은 극단 샐러드의 공연비로 후원됐다. 처음에는 힘들어서 1년 안에 10명 중 8명이 그만두고 나가던 이주민 배우들도 이제는 3년이상 진득하게 버티게 됐다.

 

“아이들이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눈앞에서 한국어로 공연을 하고 있으니까 신기해하고 좋아하더라고요. 게다가 공연 보고 다음에 바로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 더 좋아해요.”

 

“자립이요?” 극단 샐러드가 이주민들의 자립 모델이 될 수 있겠냐는 질문에 박경주 대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립은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건데 10년 넘게 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걸요.” 대신 그는 “자립은 희망”이라고 말한다.

 

“얼마 전 산간지역에 갔는데 어린이들이 너무너무 즐겁게 보고 울더라고요. 그런 장면들이 제겐 큰 의미가 됩니다. 관객 10만 명을 만날 때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지금 운영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죠.”

 

그를 오랜 시간 동안 곁에서 지켜본 한 지인은 그를 예술가와 행동가의 경계에 서 있다고 말한다. 아직도 경계에 서 있는 것이 좋다고 하는 그는 예술로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걸 원한다. ‘사회적 예술가’인 그에게 샐러드는 인생이자 언제든 잠시 멈출 수 있지만 사회를 바꿔가는 과정이다.

 

“다름에서 충돌이 발생하는 걸 부정하려 하면 오히려 큰 문제가 발생해요. 충돌의 과정이 없으면 어렵죠.”

 

 

글/장혜승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4기)

기사출처/더나은미래(www.betterfutu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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