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2012

August 9, 2012

 

 

Q. 이주 노동자와 이주여성문제,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 속에서의 의식 전환의 문제 등은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서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회적 이슈입니다. 사회적 이슈를 직접 다루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셨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활동하시면서 가장 큰 어려움, 반대로 가장 큰 보람을 꼽으신다면.

 

어려움: 다문화를 사회적 이슈로 다루는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안과 겉, 내부와 외부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 분야에서 일한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또한 언론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불필요해 보이는 속사정까지 다 알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대안언론으로서 샐러드TV를 설립한 2005년부터 2009년 까지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인 것 같습니다. 예술가로서 현장에 간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든 과정이 많습니다. 현장이 예술가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인데요. 저는 정치적으로는 어떠한 당파나 집단에도 속하지 않은 순수한 변방의 작가였기 때문에 어려웠던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극단을 만들고 창작공연을 하고 부터는 이런 어려움은 많이 해소 됐습니다. 그러나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 사건의 진실, 국제결혼 중개업의 문제점을 현안으로 다룰 때는 ‘많이 알고 있는 만큼 더욱 더 대중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진실을 작품을 통해 표현해야 한다’는 작가적 신념을 실재 창작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많이 있었어요. 이 과정에서도 제가 미술과 영화를 전공한 사람이기 때문에 새로운 장르인 공연예술로서 풀어내는데 심적 부담도 컸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가장 어려운 점이라면 ‘창작’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제 본질은 예술가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고 있는 활동이 예술활동으로 읽혀져야 하며 그러해야하기 때문에 현실참여와 창작 이 두 가지의 균형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가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보람이라면 긴 시간 동안 이 분야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지식’과 ‘이해’ 가 넓어지고 있다는 것과 이제는 현장이 제 삶으로 완전히 체화되는 것을 실감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하고 싶은 것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Q. <공감> 인턴기자들과 하신 인터뷰에 따르면 2010년 초까지는 소수자 미디어, 대안 미디어로서의 언론 활동에 초점이 모아져 있었지만, 최근에는 ‘문화예술단체 샐러드’로서 그동안 언론으로는 말할 수 없었던 부분을 보여주기 위해 극단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고 하셨는데요..또 최근에는 ‘예비사회적 기업’으로 또 변화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0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꾸준히 활동해오시면서 그 안에서 또 조금씩 무게중심을 옮겨가면서 각 시기별로 가장 해야 할 일을 찾으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예비사회적 기업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가시게 된 계기랄까, 변화의 이유는 무엇인지요?

 

사회적 기업에 대한 고민은 4년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우연히 지인을 통해 외국의 사례에 대해 이야기 들었고 자료를 찾아보다가 샐러드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로 결심하게 됐습니다. 작은 몸집이지만 새로운 가치와 착한 생산을 꾸준하게 만들어내고 참여자들이 자신의 삶의 빛나는 가치를 발견하고 또 최소한의 재정적 댓가도 가져간다면 이 조직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본격적으로 사회적 기업을 준비한 2008년부터는 구체적인 수익사업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 샐러드TV 하나만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대안언론은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품은 갖고 있지 않고 사회적 가치만 생산하는 비영리 조직에 가깝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극단입니다. 다문화 인식 개선을 위한 전문 공연단을 그것도 이주민 스스로 창작에 참여하는 극단이라면 시장에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해 낼 수 있다고 판단됐고 3~4년 좋은 작품제작에 투자한다면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갖게 될 것이라는 비전으로 샐러드 극단을 2009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저희 극단을 불러주는 곳이 없었어요. 지금은 유료초청공연 요청이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정기공연 한번 하고 사라지는 단원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지금은 한 작품에 케스팅되면 대체적으로 1년 반 이상은 함께 활동합니다. 3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단원이 전체의 30% 정도 되고 있으니 조직은 아주 안정적이 되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조직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물론 구성원을 하나의 가치로 묶어주는 신념과 비전도 중요하지만 조직을 유지해주는 최소한의 재정구조가 있어야하며 이 것이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꾸준하게 분배되어야 합니다. 이게 제가 샐러드 극단을 운영하면서 얻은 교훈입니다. 샐러드 극단에서는 이게 다 가능하거든요. 샐러드 극단은 현재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 사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주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보통 ‘돈이냐 예술이냐’ 라는 고민을 많이 하는데요. 예술가로서 저도 이전에는 당연히 돈과 예술은 공존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샐러드 극단을 운영하면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라는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우리가 생산한 공연으로 관객이 반응하고 또 이들이 이러한 공연을 돈을 내고 보는 것은 아주 건전한 소비입니다. 이 건전한 소비를 통해 창작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이 생활하고 또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사회적기업으로서 샐러드는 이러한 착한 문화예술 소비와 창작이 지속 가능한 방법을 계속 찾아갈 계획입니다.

 

Q. 아트센터 나비에서 소개하게 될 <미래 이야기>는 <당신은 나를 기억하는가>, <여수 처음 중간 끝>, <란의 일기>로 이어지는 <존경받지 못한 죽음> 연작 중 4부라고 알고 있습니다. 작품의 소재와 대상이 파독광부로부터 여수 화재 사건, 남편에게 살해당한 이주여성 등 다양합니다. 공연의 주제나 소재를 어떻게 구성하시는지요?

 

존경받지 못한 죽음 시리즈는 예술가로서 제가 이주의 문제에 ‘집착’한 모든 시기의 고민이 녹아 있는 작품입니다. <당신은 나를 기억하는가>는 파독광부의 죽음을, <여수 처음 중간 끝>은 여수 외국인보호소에서의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란의 일기>는 한국으로 입국한 한 이주여성의 의문사를 다루었습니다. 파독광부 문제는 제가 독일 베를린에서 유학하고 있던 시절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창작할 수 있었던 작품이 <당신은 나를 기억하는가> 이구요. 2000년 당시 베를린 한인회에 근무할 때 파독광부 적립금을 갖고 현지 교민분들이 논쟁 벌이시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는데 이때부터 파독광부 분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2010년 렉처퍼포먼스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여수 처음 중간 끝>과 <란의 일기>는 샐러드 TV를 운영하면서 제가 직접 현장에서 취재했던 내용으로 극단을 만들기 전부터 작가로서 꼭 다뤄보고 싶었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2007년 여수 합동 장례식장에서 두 달 여간 취재하면서 목격한 진실은 기사로는 작성할 수 없었습니다. 합동장례식장에서 먹고자면서 촬영했던 영상들이 2010년 <여수 처음 중간 끝> 연극무대를 통해 관객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란의 일기> 또한 제가 취재했던 사건에서 출발했습니다. 2008년 우연히 베트남 언론사 기사를 검색하다가 란이라는 베트남 이주여성이 경산시 한 아파트에서 입국 한 달 만에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았고 이를 경산시의 시민단체에 제보하고 밀착취재했었는데 경산시 시민단체에서 저한테 한국어로 번역해달라며 경찰서에서 입수한 란의 일기를 팩스로 보내오게 됐고 문맹이기 때문에 모국어로도 자신의 삶을 기록하기 어려웠던 이주여성의 현실을 보고 언젠가 이 일기로 연극을 만들겠다고 결심했고 2011년 이를 연극으로 만들게 됐습니다. 최근에 만들었던 <미래이야기>는 난민문제에 대한 취재를 하면서 느꼈던 부분을 공연으로 푼 작품입니다. 난민에 관해서는 유난히도 ‘진짜’와 ‘가짜’ 논쟁이 많았어요. 존경받지 못한 죽음 시리즈를 기획할 때부터 이 시리즈의 마지막은 난민이야기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공연을 만들려고 하는 2012년에는 특별한 난민이슈가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이 작품에서는 ‘미디어의 가짜와 진짜’가 작품의 큰 소재가 됐습니다. 존경받지 못한 죽음 시리즈는 의도적으로 무대에서 전문배우가 배제된 ‘배우 없는 연극’ 시리즈입니다. 이주민 당사자들이 모든 작품에 참여했어요. <당신은 나를 기억하는가>는 재한 파독광부 모임 회원 분들 앞에서 공연했구요. 여수 처음 중간 끝에는 보호소 화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와 이들을 삼당하고 있는 심리상담자가 무대에 올랐으며 란의 일기 개정판 공연에서는 한국인 국제결혼 피해남성들이 무대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이야기 했습니다. 미래이야기에서는 재한 난민은 물론 재일 한국인 난민과 재태국버마인 난민이 공연에 참여했습니다. 이 당사자들 모두 제가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지인들이며 이들과 함께 공연을 만든 것입니다. 6여년 간의 언론인으로서의 현장 경험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던 작품들이네요.

 

Q. 결혼이주여성의 문제를 다룰 때 단순히 이주여성을 피해자로만 보는 단순한 관점이 아니라, 그들의 남편의 입장도 보시는 등,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를 비롯한 갈등의 문제를 섬세하고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역시, 작가다운 접근, 작가다운 관점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이기도 합니다. 여느 활동가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해오셨지만, 작가로서의 감성과 훈련이 도움이 되었다고 느끼시는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국제결혼 피해남성과 만든 무대를 보다가 뛰쳐나간 연극평론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아는 분을 통해 들었습니다. 전 속으로 “ 내가 원하던 게 바로 그런 반응” 이라는 생각을 했고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이분들을 섭외해서 8차례 연극수업을 하고 장면을 함께 만들면서 원했던 것 관객들의 동정적인 시선도 비판도 아닙니다. 저는 연극 무대에 하나의 사건을 만들고 싶었어요. 혜화동일번지라는 대학로 핵심 장소에 사회적으로 비난받고 천대 받아 누구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가장 열등한 사람들’로 낙인 찍힌 피패남성분들이 누가 들어줄지 어떨지 모르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그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으로 남길 바랬으며 공연 관객이 연출과 공연자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거나 공연장을 뛰쳐나가거나 하는 반응은 이에 수반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의 연출과 극작에서 가장 작가다운 점은 바로 이 지점인 것 같습니다. 연극무대에 사건을 만들고 이에 대한 반응에 대해 두려워 하지 않는 것. 왜냐하면 그러한 반응도 제 연출에서는 무대의 구성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주민 배우들만 있는 무대에서 한국어 능력만 평가하려는 소수의 관객들의 반응 또한 연출로서 계산된 부분입니다. 한국인 배우와 함께 이주민 배우가 서있다면 관객들은 이주민 배우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아 버릴 것이기 때문에 한국인 배우를 의도적으로 배제하였고 이들의 발음과 발성에 대한 야유 또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작가로서 제가 연출한 무대는 기술적으로 대사를 잘 전달하는 한국인 전문 배우보다 서툰 한국어 사투리로 자신들의 진실을 전달하는 이주민 배우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제가 연출자이기 이전에 작가로서의 제 신념에 더욱 충실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Q. 공연이라는 장르 특성상 회화와 달리,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시간도, 비용도, 열정도 많이 소요되는 과정인데요, 게다가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다 보니 불필요한 오해나 다툼도 일어날 소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조율하고 조정하시는지요.

 

샐러드의 공연을 함께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이주민입니다. 전체 구성원에서 조명감독과 영상감독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이주민이니 전체의 90%가 이주민으로 구성된 공연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아무래도 언어소통입니다. 영어만 하는 사람. 한국어는 잘하지만 영어는 못하는 사람. 문맹인 사람. 다양한 사람이 참여합니다. 그래서 연습진행도 일반 극단에 비해 아주 느리고 더딥니다. 대본 이해하는 데에만 거의 모든 시간을 투자하고 있기도 하구요. 소통의 잘 안되어서 오는 작은 다툼은 항상 있습니다. 매일 오늘은 무슨일 이 일어날까 긴장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을 정도이니까요. 이 문제에 대한 저의 결론은 “모든 조직에는 이러한 소통의 문제가 있다. 언어가 통하든 통하지 않든.”입니다. 조율은 개인면담이나 전체 회의를 통해 하고 있습니다.

 

Q. 개인적인 질문이지만, 이주노동자 방송국부터 샐러드TV까지 한 작가 개인의 힘으로 시작하고 운영했다고 믿기 힘든 일을 긴 시간 동안 꾸준히 해오셨습니다. 의미 있는 활동에 헌신해오신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개인 작가로서의 활동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아쉬움이 들지는 않으셨는지요? 최고의 미술대학에서 공부하셨고, 독일 유학도 다녀오셨고 작가로서 소위 ‘엘리트’ 코스를 거치셨고, 작업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으신데요.. 남들과 다른, 평범하지 않은 길을 선택하셨잖아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모두 작가로서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천성이 센터보다는 변방을 항상 좋아했던 것 같고 그러한 저의 천성이 이런 길에 들어서도록 저를 인도한 것 같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재미있고 사회에 대해 인간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는 과정이 즐겁습니다. 만약 제가 작가로서 인정받게 된다면 지금 이 모습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Q. <마리나와 비제>를 보면서, 어떤 분들이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하게 된 건지 궁금했습니다.

 

원래 공연에 뜻을 가진 분들이신지요? 워크숍 참석자에서 연습생, 또 준단원, 정단원으로 활약하면서 그들 내부에 어떤 변화가 감지되시는지요?

 

샐러드에서 실시하는 연극교실 수강생들이 샐러드 공연에 참여하게 됩니다. 사토유키에씨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어서 제가 특별 출연을 부탁했던 거구요. 샐러드 단원은 6개월에서 일년정도 수습단원 시기를 거치고 정단원이 됩니다. 수습단원 시절에는 무대에 서는게 그냥 좋아서 오는 경우가 많구요. 정단원으로 2년 정도 활동하게 되면 공연을 하는 사회적 의미에 더욱 뜻을 두게 됩니다. 그리고 연기에 대해 무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기 시작해요. 그러니까 2년 정도되면 예술가로서의 길로 들어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매년 많은 수의 수습단원이 샐러드의 문을 두드립니다, 그러나 이 중 정단원이 되어 예술가로서 살기를 선택하는 경우는 한해에 한명에서 두명 정도입니다. 중도탈락하는 참여자들에게는 인생의 좋은 추억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긍지가 남게 됩니다.

 

Q. (일반 결혼이주여성이라면) 그 가족들의 반응은 보통 어떠한지요? 연습시간도 적잖이 소요될 테고 가족들의 이해와 지지가 없으면 쉽지 않을 듯한데요..

 

한 공연 준비하는데 일주일에 5일 매일 6시간 이상 최소 6주를 연습합니다. 또한 공연을 만들어 놓고 학교나 기관으로 방문공연을 가는 게 일년에 40회 이상 됩니다. 가족이 이 일을 동의하고 지지하지 않는다면 하기 힘든 일입니다. 저희 단원들이 가끔 남편이나 시댁의 반대에 부딪치면 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한국에서 사회활동하는 여성은 누구나 겪는 일이니 특별하게 반응하지 말고 자신의 활동을 지속해야한다“고요. 모두들 결혼하고 아이까지 있는 성인들이니까 스스로 해결하도록 그냥 두는 편입니다.

 

Q. 방송이라면 전문 방송인들이, 공연이라면 전문 연극인들이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박대표님의 활동 속에서는 일반인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공연을 만들어 무대에 서게 하는 등, 완전히 접근이 다르다고 봅니다. 저희가 이번 전시에서 생각한 ‘만인예술가’의 컨셉과도 맞닿아있고, 또 기존의 예술계라는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예술문화를 만들어가신다는 점에서 진정한 ‘문화창조자’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나 사업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샐러드를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 제 지금 꿈이고 도전입니다.

 

Q.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의견, 예술이 사회와 맺는 건강하고 이상적인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예술의 자리를 지키면서 사회적인 역할도 하는 것이 어렵지만 중요한 것 같아요. 예술가는 사회운동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가 사회운동가로 둔갑한다면 예술도 그냥 사회운동으로 둔갑하겠지요. 예술로서 하는 운동을 해야 하며 그 운동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호소해야하며 감성으로 대중을 만나야 할 것 같아요. 운동과 예술의 긴장감을 잘 갖고 가는 게 가장 건강하고 이상적인 사회적 예술이 아닌가 싶습니다.

 

 

* 본 원고는 아트센터 나비에서 열렸던 <만인예술가전> 도록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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