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공동체의 저널리즘

March 1, 2008

한국에서 보낸 6년 동안 나는 많은 ‘부침’을 경험했다. 나는 기자로서 네팔 노동자들의 숨겨진 이야기들과 이들의 경험에 관한 기사를 써왔고, 당시 이러한 기사들은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내가 생산했던 대부분의 기사들은 네팔 이주노동자들과 이들이 겪는 문제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뇌물문제에 관한 기사를 썼을 때에는 브로커들이 나를 협박하기도 했다. 2004년도에 인력중개업체인 룸바니(Lumbani, 네팔 외국인 산업연수생 관리업체로 가장 큰 회사)와 문드롭스(Moondrops, 네팔 외국인 산업연수생 관리업체)의 부패에 관한 연재 기사를 썼을 때에는 브로커들이 직간접적으로 내게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룸바니 소속의 존(John)이란 사람은 해외에서 내게 전화를 걸어 “나에 관한 기사를 계속해서 쓰겠다면 너를 네팔로 보내버리겠다 (정치적 압력을 넣어 강제추방시키겠다는 뜻)”고 말하기까지 했다. 전화 받을 당시 나는 남편과 함께 있었고 존씨가 이른 아침에 제게 전화를 걸었을 때 남편은 자신의 박사 논문 심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고 난 뒤 존은 제 남편의 논문지도교수에게 (협박)전화를 했다. 하지만 지도교수는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언론의 자유를 존중한다며  용기를 주었다.

 

한국에서 기자로 생활하면서 (나는 주로 네팔 현지 일간지인 ‘칸티푸르’지에 투고했다) 나는 사회 구석구석으로부터 내 기사보도에 관해 지지를 받아왔다. 내가 제기하는 이슈들은 정확한 조사에 근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네팔에 소재한 트리부반 대학(Tribhuvan University)에서 “한국 거주 네팔 이주자들”에 관해 석사학위논문을 썼다. 따라서 당시 나는 뉴스/기사를 강화할 충분한 자료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마침내 한국 정부 또한 존씨를 조사하였고 뇌물 혐의로 체포되었다. 네팔 정부는 내가 작성한 뉴스 기사를 접하고 두 인력 중개업체에 대한 조치를 취했다. 네팔과 한국이 정부차원에서(고용허가제) 노동자 문제를 다루기로 합의함에 따라, 나는 문제들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방송국에서의 책무

 

현재 나는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2007년도에 이주노동자방송국 박경주 대표는 내게 네팔어사이트의 편집장이 되어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법에 따르면 유학생은 비상근업무를 할 수 있으므로, 이주노동자방송국에서 내 직무는 한국의 이민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나는 인터넷 미디어에 관한 경험이 없었고, 방송국의 재정 상태는 관련 분야에서 10년간 일한 내 경험에 준하는 임금을 지불 할 형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다국어 사이트를 개설하려는 박경주 대표의 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한 시도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리고 소외된 이주민 공동체들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 8개월 간 네팔 페이지 편집장으로서  나는 노동자 단체들을 위한 많은 이야기들을 다루었다. 그러면서 나는 열악함에 대한 투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기자로서 나는 투쟁할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네팔 위장 결혼업자들에 관해  기사를 썼는데 몇몇 네팔인들은 이에 대해 불만스러워하며 현실을 부정하고 거짓을 옹호하는 반론 기사를 쓰기도 했다. 또한 나는 네팔의 외무부에 문서탄원을 하면서까지, 다루고 싶지 않은 몇몇 특별한 사안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기자로서 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이러한 문제들에 직면해 있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온라인 미디어와 법

 

이주노동자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나는 몇몇 다른 신생 온라인 미디어들 역시 네팔 이주민 공동체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내가 소리 없는 자들의 소리를  대변하면, (전체가 아닌) 그들 가운데 일부는 정반대의 뉴스를 써서 억지주장을 펼쳤다. 내가 대사관의 낭비와 실수에 관해 문제제기를 하면, 이들은 대사관의 대변인이 되어 나타났다. 이에 내가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하면, 그들은 누군가가 출판을 하라며 뉴스/기사를 전해준 것이라고 답할 뿐이다. 일례로, 네팔 이주노동자인 라구 트리파티(Raghu Tripath)는 이주노동자방송국에서 제기한 이슈에 반하여 대사관의 편에 서서 기사를 썼다. 그 뉴스가 어디에선가 조작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언론인으로서, 학생으로서, 그리고 네팔 시민으로서 나는 한국의 네팔 대사관이 만든 프로그램에 관하여 문제제기를 하였다. 일례로 나는 대사관이 점심시간에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점과 대사관 임대료가 가난한 국가인 네팔의 경제적 능력을 감안할 때 높은 수준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만약 누군가 내 뉴스기사에 관해 (제대로 된) 논평을 하고자 한다면, 그는 대사관은 점심시간에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말하든지 아니면 점심시간에 전화를 받는 것의 불필요성을 논리적으로 말해야 한다. 그러나 우습게도 라구는 만일 우리가 비판을 하게 되면 대사관과 네팔 공동체의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고 썼다. 나는 마오이스트 자매기관들이 네팔 대사관의 편향된 활동들에 불만스러워한다고 썼으나, 라구는 내 기사가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 기사를 쓸 뿐이었다.

 

저널리즘의 일반적 통칙은, 만일 누군가가 보도된 뉴스에 관하여 유보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을 경우 이에 비평을 하기 위해서는 그 뉴스가 처음으로 보도된 미디어에 대하여 비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일반적 통칙은, 만일 누군가가 보도된 뉴스에 관하여 유보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을 경우 이에 비평을 하기 위해서는 그 뉴스가 처음에 보도된 미디어에 비평을 게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평은 사실에 근거해야만 한다. 근거가 없고,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추상적인 글쓰기를 보면서 나는 비평을 하는 사람은 사안에 대해서 동등한 수준으로 잘 알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각각의 재한 네팔 온라인 미디어 편집장들에게 그들이 이 같은 사실 무근의 기사를 보도하는 이유를 알아볼 것을 요청했다. 일부는 전화를 받지 않았으며, 한 편집장은 자신들에게 투고한 시민기자의 뉴스를 보도하지 않을 경우에는 앞으로 이 사람이 뉴스를 보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뉴스가 희소해질 것이고 이러한 이유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사는 무엇이든 보도하게 된다고 변명했다..

 

누가 이주민 공동체에서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가?

 

한국 내 외국인들 수가 증가함에 따라, 다양한 국적의 공동체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주민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문제점들도 점차 쌓여가고 있다. 서로 다른 국적 간의 폭력은 그 가운데서도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문제는 누가 외국인 공동체의 법과 질서를 지킬 주체인가 하는 것이다.

 

  • 작성자: 마드하비 바따 (다문화방송국 Salad TV 네팔어 사이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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