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다~문화

November 4, 2006

이주노동자 관련 문화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점들.

 

 

국내 체류 이주노동자들의 역사가 이제 17년을 넘어섰다. 법무부에도 이제 이민청이 만들어지고 2007년 1월부터는 외국인 노동인력의 유입이 고용허가제로 일원화되어 그 동안 한국이 불법적으로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노동력만을 착취해왔다는 누명은 한 커플 벗을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가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한 국제결혼 가정의 숫자는 한국 문화가 더 이상 ‘백의민족 상표’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데 마침표를 찍고 있다.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작년 하반기부터는 정부 부처에서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각양각색의 정책과 지원이 쏟아지고 있다. 막혔던 하수구가 뚫리는 모양, 갑작스럽게 쏟아져 나오는 지원들은 지금까지 어렵게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쳐왔던 인권단체들의 입에서 즐거운 함성이 나오도록 하고 있다 -물론, 관련단체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러나 그 함성의 그림자 속에는 단순하게 ‘다문화 사회 속, 문화적 약자이자 소수자’로 그려지고 또 ‘문화소외자’로만 그려진 이주노동자들의 난처한 표정이 발견된다. 왜 일까?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들을 문화적으로 지원한다는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은 너무 상투적이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이들 이주노동자들은 우리와는 다른 옷을 입어야 하고 우리와는 다른 악기를 들고 우리와는 다른 춤을 추며 우리와는 다른 음식을 먹어야 비로소 광장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결혼을 통해 이주해온 이주여성들은 한국의 의식주 문화를 열심히 배워야 한다. 그 중에서도 ‘김장 담그는 법’은 제일 중요하다. 또한 시부모를 모시는 예의범절 또한 아직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이주여성들에게 알게 모르게 강요되고 있는 중요한 다문화프로그램 중 하나다. 이 여성들은 서로 알지도 못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남자의 손을 잡고 국경을 넘어 왔다. 그것도 적게는 10년에서 많게는 20년 이상의 나이차이를 무릅쓰고.

 

‘다문화’의 진정한 의미는 문화적 맥락 속에서 개인과 사회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문제는 한 개인이 ‘절대’ 한 개의 문화적 맥락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데 다문화간의 소통에 어려움을 갖게 한다. 개개인의 이주자들이 속한 국가와 종교, 계급과 계층, 성적 취향, 직업 등 다양한 색깔의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주자와 이주노동자들에게 단 한 개의 문화적 색깔을 뒤집어 씌우려 하거나, 반대로 한국문화를 한가지 색으로만 이해하도록 강요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최근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벌어지고 있는 다문화와 관련된 문화활동들이 대부분 이 범위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너와 나의 가치가 서로 동등하다는 것, 우리가 문화적으로는 수평적인 관계라는 것, 문화에는 중심도 없고 주변도 없다는 것, 더 나아가서는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서로의 소통의 코드를 찾도록 돕는 것이 다문화를 위한 올바른 프로그램이 아닐까?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내년에는 문화관광부 등 정부 부처에서 다문화에 관한 지원을 더 확대한다고 한다. 문화관광부 산하 문화예술교육 분과에서는 최근 전문가들을 모아 ‘이주노동자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문화와 예술이 교육되어 질 수 있다는 착상 자체는 위험할 수도 있지만, 이주노동자를 동원하여 대규모 축제를 진행할 줄만 알았던 문화관광부가 비로소 이주자와 이주노동자의 문제에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가장 큰 결핍은 이주노동자와 다문화에 관심이 많은 인권활동가들은 많은데 그 현장에 전문적인 문화활동가들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문화활동가들이 현장으로 와 현장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문제점들과 싸우며 신선한 ‘문화적 실험’을 하길 바란다.

 

미술관을 벽을 넘어 현장에 나가겠다고 ‘소수자’를 찾는 문화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다. 진정으로 현장에서 맨살을 부대끼며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면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헤게모니’에 관한 집착’을 버리고 알몸으로 다가서야 할 것이다. 물론 미술관을 비롯한 기존의 문화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만들어진 예술가의 활동이 다시 미술관 안으로 들어와야 만족해 하겠지만.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것, 다문화간의 소통에 관한 문화적 활동을 한다는 것은 거대한 담론을 만드는 일이 되어선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마이너리티’가 아니니까. 그렇다고 내가 다문화와 관련된 문화운동들이 힘을 얻어 더 큰 목소리로 이 문제를 세상에 알리는 것에 반대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화적 소수자’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논의가 부재된 ‘상품화되어 팔아먹기 식’의 한가지 이슈거리로 만들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오히려 작은 목소리로 사회에 작은 물결을 일으키는 지속적인 활동이 더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문화나 소수자와 관련된 문화활동은 어렵다. 끈기 있게 미래를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보며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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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미의 다문화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그냥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일 수도 있고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면서 일어나는 충돌일 수도 있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충격이 클 것이고. 충격 실컷 받아 놓고 쿨 한척 “아니예요, 괜찮아요, 저 다 이해했어요”라고 위선을 떨어선 안 된다. 논쟁이 필요하면 격렬하게 논쟁하고 끝나고 나서는 서로를 안아주기도 하고.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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