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와 노동의 아티비스트(artivist) 박경주

March 14, 2005


머무르지 못하는 삶의 상처를 치유하며 이주와 노동의 정체를 통찰하고자하는 예술가 박경주. 그는 예술과 현실의 간극을 메우며 그 경계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예언하는 예술가로서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작가이다. 나아가 그는 국가와 지역과 인종과 민족과 계급의 이름으로 떠도는 노동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반자본의 이름으로 그 경계를 넘나드는 문화활동가이다. 나는 이렇듯 예술가와 활동가의 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박경주를 행동주의 예술가로 규정하며, 그의 실천을 21세기의 대안적인 미술운동의 한 양상으로 파악하고, 나아가 예술과 현실의 간극을 넘어서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내는 공공적인 예술행동의 모습으로 읽어내고자 한다.

사진, 영상, 설치 : 이주와 노동의 정체를 담아내다

 

박경주는 독일 땅에서 만난 이방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이주노동의 문제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가 ‘베를린 이주노동자 프로젝트’를 벌인 것은 1999년이었다. 그는 베를린의 출입국관리사무소 앞 다리 위에서 3백여명 가량의 이주노동자들을 다큐 사진에 담았다. 베를린 출입국 관리소 앞을 지나다니는 다양한 인종들의 삶 속에 들어 있는 인종·국가·민족 등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 박경주는 그들과 대화하며 다가서기 시작했다. 그는 이 사진들을 독일의 시민들에게 보여주었다. 다리 위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인물들의 전신상은 소극적이나마 자신의 특성을 표현하는 약간의 포즈가 들어 있는데, 박경주의 카메라에 포착된 이주노동자들은 의식적인 포즈 잡기를 통해 각기 다른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듯 서로 다른 피부색과 생김새를 가졌지만 이주노동자라는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인물들의 특성을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그는 수백명의 사람들을 슬라이드 프로젝터로 오버랩 시켰다.

 

이어서 그는 독일에서 만난 다양한 인종의 노동자들 가운데서도 특히 재독 한국인들의 문제에 접근하는 후속작업을 이어나갔다. 학생신분의 유학시절이 끝나고 나서 ‘독일에 체류한 외국인’ 신분의 한계상황에 봉착했을 무렵, 재독한인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파독광부, 간호사들의 속사정을 알게 되었다. 독일은 열린 사회의 합리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배타적 민족주의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속인주의 국가이다. 속인주의와 달리 속지주의는 출생신고만 하면 태어난 곳의 국적을 가지지만, 독일이나 한국 같이 속인주의 국가의 배타적인 인종개념을 가진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이주에 대해 관대하지 못하다. 독일 사회의 폐쇄성은 이주의 역사가 뿌리 깊고 광범위한 한국인들에게는 커다란 질곡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 이주(노동자)의 역사는 한 세기를 넘어서고 있다. 구한말 생존의 길을 찾아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 애니깽 노동자로서 질긴 생명을 이어낸 멕시코레안와 중앙아시아로 집단 유배된 까레이스키가 지난한 비정주의 삶을 이어왔다. 한국인의 비참한 이주는 일제 징병에 의해 끌려간 식민지 조선인들,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떠난 재미교포들로 이어진다. 농촌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가 공돌이 공순이로 일했던 대한민국의 공돌이 공순이에 이르기까지 한국인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21세기의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와 전혀 별개의 모습이 아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 역시 가난한 시절 노동의 터전을 찾아 아시아 대륙 저편 유럽에 새 삶의 터를 만들어나갔다. 박경주는 베를린한인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파독 노동자들과의 접근 가능성을 높였고 50인 정도의 간호사·광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송년회 파티 장소 한쪽에 촬영장을 만들고 그들의 초상사진을 찍었다. 수십년 동안 낯선 땅에서 새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그들은 박경주의 카메라 앞에서 깊은 삶의 역정과 회환을 담은 미소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베를린한인회 사무국 일을 하면서까지 한국인 이주노동자들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했던 것은 이주와 노동이라는 주제에 대한 일관된 작업의 신호탄이었다.

 

박경주는 사진작업과 더불어 몇 점의 전시장용 설치작품이나 단채널 비디오 작품을 남겼다. 그는 독일에서 가져온 연탄으로 전시장 바닥을 가득채운 작업 <독일의 기억>(젊은 모색전, 국립현대미술관, 2000)을 통해서 파독 광부의 존재를 드러내는 설치작품을 전시했다. 또한 이주노동자들이 공중전화 박스에서 공중전화를 붙잡고 향수를 달래는 행위를 포착한 설치작업으로 그들의 통화음성을 전시장에서 들려준 설치작품 <통화>(건너간다, 성곡미술관, 2001)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단채널 영상작업 (000000전시, 0000미술관, 2000년)은 '당신은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을 통해서 응시의 시선에 노출된 이방인의 존재를 부각하는 영상작업이다. 

 

이주노동자의 떠도는 삶에 대한 그의 사진 작업은 독일에서 같은 이방인의 시각으로 스페니쉬와 블랙과 터키, 파키스탄, 동아시아 사람들을 바라보았던 것인 반면에, 한국으로 돌아온 박경주의 시선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응시자의 시선에 노출된 이방인이었다. 그는 2001년부터 당시 한국사회에서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한 외국인노동자 문제를 다뤘다. 그는 경동교회 외국인노동자무료진료소를 찾은 외국인 노동자 1백명 가량의 초상 사진을 찍었다. 이번에도 같은 장소에서 전신상을 찍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독일의 이주노동자들과는 달리 불법체류자들이었다. 독일의 그들에 비해 신분이 훨씬 더 불안한 상태의 떠도는 삶이다. 이방인을 바라보는 한국인 예술가 박경주의 카메라 앞에 선 한국 땅의 이주노동자들은 현실의 팍팍함을 잊고 살 리 없겠지만, 사진 속 그들의 표정 속에는 이방인의 서글픈 정체성보다는 해맑은 삶의 희망들이 묻어 있다. 

 

2004년 한 해 동안 진행한 다큐멘터리 사진들은 좀더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박경주는 이주여성노동자 10명의 삶을 담은 사진을 찍었는데, 이전의 전신상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좀더 그들의 삶에 밀착해서 다양한 장면과 사건들을 담았다. 이주민의 삶과 여성의 삶이라는 이중고를 감당하고 있는 그들의 삶에 밀착해 있는 이 사진들은 화보집 <이주 여성의 삶>(2004년)으로 출판되었다. 거리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에 비해 삶의 영역에 개입해 들어가 이들 다큐멘터리 사진은 그의 작업을 훨씬 더 튼튼한 예술적 개입과 사회적 연대의 틀 속에 자리 잡게 했다. 그는 향후에 이주여성과 함께 영화를 만들 계획도 가지고 있다. 시각예술 영역의 필름작업이 아니라 국제결혼으로 인한 가정문제 등을 다룰 본격적인 극영화인 것이다.

음반, 선거유세, 인터넷방송 : 사회적 퍼포먼스 

 

이주노동자의 삶에 밀착해서 그 삶을 어루만지는 작업을 해온 박경주의 예술적 실천은 사진, 영상, 설치작업을 거쳐서 사회적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이주노동자 뮤직 프로젝트, 선거유세 퍼포먼스, 인터넷 방송국 등이 그것이다. 그는 <이주노동자 뮤직 프로젝트>(2002년)를 진행하면서 더욱 적극적인 의미의 활동가 역할을 한다. 이 무렵부터 그의 정체성은 시각예술가 겸 문화활동가이다. 예술가의 현장활동은 활동 그 자체로 비춰지면서 예술적인 범주 바깥의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박경주는 예술과 현실의 선을 넘나들기를 즐겨하는 드문 사람이다. 미술과 음악, 전시와 공연이라는 장르의 틀을 넘어서기까지 한다. 그는 버마 출신의 외국인노동자 7인으로 구성된 밴드 ‘유레카’를 결성하고, 이들의 라이브 공연과 여덟 곡이 담긴 음반을 내는 일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음반 타이틀곡은 ‘What is life’다. 사는 게 뭔지, 그들도 역시 우리처럼 삶의 절박한 문제를 노래에 담아내고 있다. 2004년 봄 공식적인 해체에 이르기까지 박경주는 밴드의 멤버들이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려서 수갑을 차고 있는 모습을 면회하거나,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그들을 공항에 나가 배웅하면서 외국인노동자들을 대상화하는 예술가의 관찰자 지위를 넘어서 보다 전향적인 의미의 행동주의 예술가로 자리 잡았다.

 

박경주의 행동주의적 예술활동은 “이주노동자를 국회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기에 이르렀다. 그는 ‘이주노동자 선거유세 퍼포먼스’를 벌이면서 예술인이 현실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박경주의 선거유세 퍼포먼스는 이주노동자에 관한 정책을 세우기 위해 ‘외국인노동자가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작업이다. 그가 예술가의 지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의 상상력은 나약한 예술가의 무기력한 상상력과는 다르다. 그는 “이주노동자를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벌였다.

 

이 프로젝트는 도심에서 선거유세를 하고 시민들의 반응을 영상다큐멘터리로 담는 방식이었다. 유세차량을 동원하거나 어깨띠를 하고 전단지를 돌리며, 마이크나 메가폰으로 시내에서 연설하고 시민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다. 서울이주노동자센터 상담 간사인 김티톤(방글라데시)씨가 가상 선거유세를 펼치면서 2004년 가을 ‘안양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한 선거유세 퍼포먼스는 안양에서 대전, 창원, 광주로 이어졌다. 김티톤에 이어 아지즈(대구), 인도네시아에서 온 박우띠(대전), 네팔에서 온 이해미니(창원), 태국 출신의 여성 이주노동자 임아리사(광주) 등이 전국의 각 도시에서 선거유세를 펼쳤다. 

 

과연 한국의 시민들은 외국인노동자 후보에게 한 표를 줄 수 있을까. 박경주가 야심차게 한국사회에 던진 이 질문은 시민들로부터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안양과 창원에서의 호의적인 반응에 비해 대구나 대전이 약간 보수적인 색채를 보였다는 점 또한 박경주가 얻어낸 지역적 정치의식의 현장리포트인 셈이다. 그는 이들 인터뷰 텍스트를 녹취해서 공유함으로써 예술가의 가장 기본적인 지위가 현실에 대한 충실한 보고자로서의 역할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매체 실험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인터넷 방송국을 열었다. 예술가와 문화운동 또는 사회운동의 경계 선상에 선 그는 이제 전위적 실험의 영역을 인터넷 매체를 이용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킹 형성을 위해 이주노동자 인터넷방송국 www.migrantsinkorea.net을 시작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현실적인 미디어 정치의 역장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을 예술적 행위의 일환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현실의 벽을 넘어서는 예술의 힘을 증거하는 중요한 일이다. 문화활동가로서의 박경주는 대안적인 소통 체제를 마련하기 위하여 많은 이주노동자들과 예술가, 대안언론 기자, 이주노동자 단체 활동가 등과 연계함으로써 상상의 근원지로서의 자신의 예술가적 지위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인터넷방송국이 이들에게 광장을 제공하고자 한다. 운영 방식도 기존의 일부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서 패쇄적으로 운영하던 것을 전면적으로 거부한다. 정보는 모두에게 공유될 수 있고 접근 가능해야한다. 이것이 올바른 민주주의다. 운동세력 내부에서의 민주화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진정한 변혁은 문제와 대안을 함께 공유하고 토론하는 지점에서 시작될 수 있다”. 박경주의 이러한 선언은 대안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만들고자 하는 그의 열망을 담고 있다. 그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각 지역의 관련 라디오 방송국을 비롯해 이주노동자 관련 컨텐츠를 통합하고 공유하는 운영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웹미디어 네터워커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한국 내에 있는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만 해도 130여개가 넘는다고 한다. 독립미디어를 통해서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루는 박경주의 작업은 흩어져있는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들의 자료 정리, 커뮤니티 통합, 네트워킹 시스템 구축 등의 과제로 이어지고 있다. 박경주의 사회적 퍼포먼스는 이제 실험적인 시각예술가와 전위적인 사회활동가 양자의 한계선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다. 



소수자, 전위, 미디어, 개념

 

 

박경주 작업의 가장 중요한 정체는 예술과 현실의 경계에 선 전위예술의 소수자성과 미디어 플레이의 묘미에 있다. 정주(定住)의 상대 개념인 이주(移住)로 인해서 발생하는 노동의 소외 현상은 이미 인권 말살의 상황을 넘어서고 있다. 또한 여기서 발생하는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이주노동자들의 정체성 문제는 행동주의 예술가 박경주가 작업의 출밤점으로 삼고 있는 이슈이다. 비루하고 남루한 이들의 정서와 사상을 담아내는 일이야말로 예술 영역의 중요한 몫이 아닐 수 없다. 예술의 장을 상징투쟁의 장으로 파악하는 피에르 부르디외의 시각으로 본다면, 박경주가 천착하고 있는 관련 작업들은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의 시각과 정서를 옹호하고 대변하며, 나아가 그들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생명을 지켜내는 일이며, 4000만 가운데 1%인 40만 소수자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작업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활동 공간을 예술영역의 문턱을 넘어서 생활영역과 예술영역이 만나는 지점에 두고 있다. 

 

박경주의 치열한 전위적 탐색은 이주와 노동의 문제를 중심축으로 강력한 구심력을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다양한 매체 실험을 향해 원심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그의 실험은 어느 한 군데서 멈추지 않고 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자리,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지점이야말로 예술가가 설 자리’라는 좌표 설정은 그를 혁신을 거듭하는 전위예술가로 평가하게 한다. 척박한 천민자본주의 현실의 벽은 예술가에게, 특히 박경주와 같은 행동주의 전위예술가에게 또 다른 실험의 장을 제공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그는 예술가 정체성에서 출발해서 문화행동가의 정체성을 점점 더 강화하고 있다. 자본주의적인 문화예술 체제에 안착하거나 예술공간의 권위에 전적으로 기대는 방식을 취하기보다는 음반기획, 거리 퍼포먼스, 인터넷방송 등과 같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문화생산의 장을 넓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자성을 옹호하는 전위예술가 박경주 작업의 미덕은 전시라는 미디어뿐만 아니라 음반제작이나 퍼포먼스, 방송 등과 같은 다양한 미디어 플레이에 있다. 박경주 예술에 있어서 행위의 개념은 그의 예술이 비물질적인 문화생산의 통로에 접근하는 기본축선이다. 그의 행위는 물질로 존재하는 예술작품과 행위자 예술가의 접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가 강조하는 행위는 과정으로서의 예술 개념에 가까운 것이다. 그는 예술 행위의 결과물을 전시하는 것만큼이나 현장에서 수행하는 퍼포먼스 과정에서의 상호소통을 중시하며 나아가 이것을 대중과 공유하고자 한다. 이것은 박경주가 추구하는 예술적 감동이 다원화한 매체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러한 행위 과정을 미디어 플레이로 증폭하고 확대재생산한다. 박경주가 구사하는 카메라워크는 점점 정신적 에너지를 고갈하고 있는 미디어아트의 난맥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매체의 기능적 측면에 기댄 형식으로서의 미디어아트는 새로운 예술적 향유 방식을 제공하지만, 그 매체적 특성 자체에 매몰되어 예술적 맥락에서 미디어를 활용하는 작가주체의 창의력이 고갈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렇듯 맥락화가 부재한 매체미술은 말그대로 박제화한 미디어아트로 전락할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이 점에 비추어 박경주가 사용하는 비디오는 여느 미디어아트 작가와 차별화하는 점이 크다. 박경주는 디지털 캠코더의 기록성과 순발력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퍼포먼스 현장의 생동감을 동영상 작업으로 담아서 로우테 단채널 영상으로 상영하는 것은 오히려 깔끔하게 뉴미디어의 특성을 갈파한 현명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박경주가 인터넷방송국을 통해서 소수자 정체성을 다루기 위해서 인터넷 미디어를 다루는 방법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1인 미디어시대의 흩어진 정보를 네트워킹함으로써 미디어 전문가가 할 수 없는 담론 활동을 불러 일킨다. 이러한 과정은 갈등과 화해를 아울러 공동선을 도출하고자 하는 예술가 고유의 몫이다. 

 

한 가지 더 주목할 대목은 그가 행동주의적 예술실천을 통해서 담론을 이끌어내는 “개념미술가”라는 점이다. 박경주 예술의 개념성은 자신의 표현을 특정 매체에 한정하지 않는 것에서 오는 근본적인 차별성이다. 그는 자신의 개념을 가장 선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를 때에 따라 다르게 가져갈 수 있는 열린 매체의 예술가이다. 개념예술가로서의 박경주 작업은 행동주의 예술전략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예술적 개입을 통해서 문화예술적이며 동시에 사회정치적인 맥락으로 작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산하는 박경주의 작업은 문화운동이자 사회운동이며 삶의 영역과 예술의 영역을 이원화하지 않는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동시에 견인하는 행동주의 예술전략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대안적인 예술운동이자 사회운동으로서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적 맥락화 작업은 전위적인 개념미술가로서의 박경주를 떠받혀주는 뒷심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질적 생산으로서의 예술 개념에서 비물질적인 문화생산의 개념으로 나아감으로써 박경주의 작업은 개념미술의 맥락을 강화한다. 

 

정신적인 의미생산의 영역에서 비물질적이며 비가시적인 가치생산의 영역에 이른 박경주 버전은 이주노동자 선거유세 퍼포먼스를 벌이고 그 결과물을 미술관에서 영상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전시하며 나아가 그 생생한 인터뷰 결과물을 NGO나 정당에 보내는 방식으로 두 영역을 동시에 포괄하는 행위 속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는 퍼포먼스의 디렉터이며, 현장의 행위자이고,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미술관 전시에 참여하는 영상작가이기도 하며, 정당에 새로운 방식의 입법투쟁을 제안하는 활동가이도 하다. 인터넷 방송국 프로젝트에 있어서도 박경주는 방송인이나 인터넷 사업자가 아닌 예술가로서 혹은 네트워커로서의 지위를 가지면서도 마치 방송인이나 인터넷 사업가가 감당해내야 하는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영국국회의사당 전체를 천으로 둘러싸기 위해서 수십년동안의 협의 과정을 거친 크리스토나 정치인으로 나서지 않는 사회적 조각(social sculpture) 개념으로 독일 녹색당의 창당에 기여한 요셉 보이스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비가시적인 행위 과정 그 자체가 예술인 프로세스 아트나 개념미술의 함의를 박경주의 작업 속에서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리얼리즘과 공공미술의 맥락

 

 

박경주 읽기의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맥락은 “현장미술 정신을 이어받은 리얼리스트”로서의 가능성이다. 박경주의 예술행동을 리얼리즘 예술운동의 맥락에서 살펴보자는 것이다. 80년대 민중미술의 성과를 살려내면서 동시에 탈근대적인 문화지형을 흡수함으로써 동시대적 맥락을 형성하기까지 난맥상을 겪어왔던 리얼리즘 미술은 90년대 후반 이후 점차 새로운 단계의 예술지형을 형성해왔다. 80년대식의 역동적인 정치적 파고가 줄어들면서 정치적 아방가르드의 시대를 구가했던 한 시대의 편향은 또 다른 변화를 요청받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현대미술은 리얼리즘미술을 고착화한 형식 개념에 머무르지 않고 태도의 문제로 전환하도록 했다. 민족과 계급의 이름으로 환원하던 리얼리즘미술운동의 이슈를 다원화 한 것이다. 이주노동자 문제에 접근하는 박경주라는 예술가 한 사람의 작업에서 인권, 소수자, 여성, 인종, 계급, 노동, 국가, 전시구화 등의 문제에 대해 권력과 저항, 자본과 반자본, 전지구화와 지역주의 이슈 등 첨예한 현대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곧 그가 새로운 리얼리즘 미술운동의 주요한 흐름 한가운데에 있음을 의미한다. 

 

80년대 한국사회의 독특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비판적 리얼리즘과 함께 당대를 풍미한 현장미술의 함의가 21세기의 예술에 있어서도 여전히 실질적인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경주의 작업은 투쟁의 현장과 일상의 영역에서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넘어서기 위해 예술적 실천을 앞세웠던 80년대 현장미술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은 60년대 서구에서 형성된 공공미술이나 액티비즘에 비해 훨씬 구체적으로 한국사회의 예술운동사의 한 부분으로 맥락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상당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박경주의 문화행동이 80년대 현장미술과 큰 흐름을 공유하면서도 차별화하는 지점을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80년대 현장미술이 투쟁의 현장, 삶의 현장에서 정치적 내러티브에 중점을 두는 문화 도구주의적 경향을 부정하지 않았다면, 박경주식 현장미술은 스스로 조직하고 기획하는 문화활동가의 지위를 가지고 여러 현장 조직들과 유기적인 네트워킹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전자가 주문제작형의 물질적 형태의 예술작품을 통해서 시각적인 선전물로서 기능했다는 비판에 일부 노출된 반면, 후자는 자발적인 참여나 기획에 의한 비물질적 형태의 예술실천을 통해 예술의 자율성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박경주는 21세기 한국 사회에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편향을 기반으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낮은 수준의 경계를 넘어설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것은 반인권을 넘어선 휴머니즘의 발현과 천민자본주의의 발호를 경계하는 ‘반자본의 저항’이며, 식민지 조선과 분단의 비극을 딛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정신적으로 황폐하기 그지없는 한국사회의 오만과 편견을 불식하는 ‘휴머니즘의 재발견’이라는 맥락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렇나 박경주의 작업은, 수잔 레이시의 말을 잠시 빌자면, 박경주는 새로운 공공예술의 맥락에서 ‘행동가로서의 예술적 지위’를 갖는다. 그는 예술가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감성적 표현의 영역에서 출발해서 자신이 입수한 정보를 분석하고 가공해서 전달하는 보고자의 기능을 수행하며, 종국에는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는 행동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단계별로 명확한 분리의 선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예술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함께 가져가기 위한 박경주의 명민함이 돋보인다.

 

그는 21세기 한국 사회에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편향을 기반으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낮은 수준의 경계를 넘어설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것은 반인권을 넘어선 휴머니즘의 발현과 천민자본주의의 발호를 경계하는 ‘반자본의 저항’이며, 식민지 조선과 분단의 비극을 딛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정신적으로 황폐하기 그지없는 한국사회의 오만과 편견을 불식하는 ‘휴머니즘의 재발견’이라는 맥락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여기서 수잔 레이시의 개념에 따르면, 박경주는 새로운 공공예술의 맥락에서 ‘행동가로서의 예술적 지위’를 갖는다. 그는 예술가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감성적 표현의 영역에서 출발해서 자신이 입수한 정보를 분석하고 가공해서 전달하는 보고자의 기능을 수행하며, 종국에는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는 행동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단계별로 명확한 분리의 선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예술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함께 가져가기 위한 박경주의 명민함이 돋보인다.

기금을 만들고, 후원을 얻어내며, 자원봉사자 및 협력자, 조력자를 만들어 나가고, 여론을 형성하며, 각종 엔지오단체들을 만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의 이주노동자들과 꾸준히 만나는 일, 이주노동자들의 자치공동체와 연계하는 일 등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행동주의 예술가 박경주의 몫이다. 박경주는 이주와 노동이라는 키워드로부터 인권, 인종, 세계화, 노동, 반자본 등 21세기 첨단의 논점들이 얽힌 당대의 문제를 정교하게 얽어서 끌어들이고 있다. 박경주를 규명하기 위해 동원된 여러 가지 수사들 가운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행동하는 예술인이라는 점이다. 그는 현장미술의 맥락을 이어나가는 리얼리스트로서 사회적 퍼포먼스를 통해 개념예술의 함의를 찾아내고 있고, 새로운 공공미술의 가능성을 넓혀나가고 있다. 나아가 그는 문화예술의 차원에서 사회적 의제를 호출함으로써 행동주의 예술의 실천적 함의를 만들어 나가고 나서고 있다. 소수자 인권 평등의 시대정신을 아우르면서, 이주노동자에 관한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내고, 우리의 뼈아픈 과거를 돌아보며, 척박한 현실을 껴안고 공동선의 미래를 예언하는 예술가적 통찰력과 예지력. 이것이야말로 21세기 리얼리스트 박경주를 이 시대의 아티비스트(artivist)로 존재하게 하는 힘이다.

 

* 본 원고는 박경주 작품집 <이주 + 노동 + 문화행동>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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