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정치인’ 언제쯤 나올까?

December 27, 2004

대전과 창원에서 이주노동자 선거유세 퍼포먼스 펼쳐져

 

지난 9월과 12월 안양과 대구의 거리에서 이주노동자를 정치 후보자로 내세워 퍼포먼스를 벌였던 박경주(36·문화활동가)씨가 성탄절 연휴였던 지난 25일와 26일, 각각 대전과 창원에서 이주노동자 선거유세 퍼포먼스를 벌였다.

영하로 떨어진 추운 날씨에도 이주민 출신 선거후보자들과 지역 선거운동원들은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 이주민 출신 정치인에게 한 표를 부탁하며 의견을 물었다.

대전에서 이주노동자 정치인이 나올 수 있을까?

성탄절이던 지난 25일 오후 2시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 박우띠(28·인도네시아)씨가 후보로 설정된 선거유세 퍼포먼스가 대전 시내에서 펼쳐졌다.

후보자 박우띠씨와 조한(31·인도네시아)씨, 김봉구(외국인 이주노동자 종합지원센터 소장)씨는 '기호 1번 무소속 박우띠'라고 글자가 새겨진 어깨띠를 두르고, 성탄절 분위기에 맞춰 산타의 빨간 모자를 쓰고 대전시내 동방마트 앞에서 출발해 중앙로 1번지 지하상가, 으능정이 문화거리, 홍명 전자상가 앞에서 선거유세 퍼포먼스를 펼쳤다.

 

 

중앙로 지하상가에서 만난 중학교 입학을 앞 둔 초등학교 6학년 유선영(수미초 6), 이예지(정림초 6), 박수아(수미초 6) 양은 “현재 투표권은 없으나, 이주노동자도 정치에 출마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로 젊은이들이 붐비던 으능정이 거리에서 만난 대전 시민들은 대체로 카메라가 다가오자 낯설어 했다. 선전 유인물을 받아든 강기태(21·송강동)씨는 “대전에서 이주노동자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또 홍명전자상가 앞에는 만난 홍증표(50·내동)씨는 “이주노동자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국회의원에 출마할 수 있지만, 그 시간은 약 20년 후가 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인천 부평공단에서 30년 동안 봉제업을 했다는 신모(55·노숙자)씨는 우선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합법화가 가장 시급한 문제라며 앞으로 이주노동자가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선 우선 민주적인 조직체를 꾸려야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선거유세 퍼포먼스에 직접 참여해 선거운동원으로 시민들을 만났던 김봉구(외국인 이주노동자 종합지원센터 소장)씨는 현재 대전 등 충남 지역에만 약 2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주로 금속 유리 등 제조업인 3D업종에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적별로는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많으며 체불임금, 산업재해, 퇴직금, 이직, 출국 등의 문제로 상담소를 방문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는 민간에서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권익 보호 노력은 마땅히 정부의 몫이라며, 상담소가 문을 연 지 3년 밖에 안 되었지만 앞으로 정부와 기업이 자신들의 일을 찾아가고, 민간은 이주노동자와 시민들이 만날 수 있는 국제교류사업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무엇보다도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합법화와 산업연수생제도의 폐지가 가장 시급한 문제라며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의 ‘값싼 노동력’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타 민족과 종교를 이해하는 기회로 삼아, 우리사회가 성숙해 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대전에서 이주노동자 국회의원이 나오는 시기를 앞으로 10년이라고 내다봤다.

 

4년 전 연수생비자로 입국해 대구의 섬유공장에서 일하다 월급이 너무 적어 대전의 금속공장으로 이주했다는 후보자 박우띠씨는 현재는 일자리가 없어 쉬고 있지만 열심히 일해서 고국으로 돌아가면, 컴퓨터를 파는 전자상가를 운영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성탄절 이브에 고향생각에 잠 못 이루고 PC방에서 새벽 3시까지 채팅을 했는데 채팅 상대자가 자신을 위로하는 말에 그만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 연말연시에 고향에 대한 향수로 힘들어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마음을 돌아보게 했다.

추운 날씨에도 얇은 양복차림으로 4시간 동안 선거운동원으로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났던 조한씨는 지금은 한국이 좋아 여기서 오래 살고 싶지만 언젠가 고국에 돌아간다면, 경제적 어려움으로 그만두었던 의학 공부를 마쳐 의사가 되고 싶다고 자신의 꿈을 밝혔다.

 

일하는 사람들의 고향 창원에서 이주노동자 정치인이 나온다면?

강제추방 반대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를 외치며 명동성당에서 380일간의 천막농성을 벌였던 농성단원 이해미니(30·네팔)씨가 지난 26일 창원에서 이주노동자 선거유세 퍼포먼스의 선거 후보자로 나섰다.

창원으로 향한 기차 안에서 승객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는 것으로 시작한 퍼포먼스는 창원 시내와 경남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 주최로 열린 송년행사인 ‘아시아 문화와의 만남'로 이어졌다.

후보자 이해미니씨는 선거유인물을 나눠주며 유창한 한국어로 ‘자신은 한국에 12년간 살았으며,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의 시민들을 위한 정치를 펴고 싶다’고 출마의 변을 얘기했다.

부산행 KTX 열차에서 선거유인물을 받아들고 놀란 승객 강을식(서울거주)씨는 “아직까지는 이주노동자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한 표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옆자리의 승객들을 의식해서인지 아주 작은 소리로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더 확고하게 자리를 잡기 위해서 정치에 참여한다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 시내에서 가진 퍼포먼스에서 만난 조예성(38·도계동)씨는 "기득권 세력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좀 어렵지 않겠냐"면서 "지역에 타운 형성이 되려면 약 20-30년은 기다려야 되지 않겠냐"고 답했다. 그러나 그는 이주노동자가 정치에 직접 참여하겠다는 것은 좋은 생각이라면서 힘내라는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고향 전라도를 떠나 15년 간 객지 생활을 했기 때문에 고향을 떠난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는 최병욱(33·현재 제주 거주)씨는 "주변에 외국인노동자 친구들이 많다"며 "이주노동자를 위한 바른 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전하면서 이주노동자 후보에게 한 표 줄 수 있다고 밝혔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창원을 방문한 윤은란(29·진주)씨는 이주노동자가 정치인이 되기는 어렵겠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한 표를 줄 수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후보자 이해미니씨는 경남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 주최로 열린 송년행사인 ‘아시아 문화와의 만남’에서 자신의 연설문을 낭독해 약 500 여 이주노동자와 관계자들에게서 기립 박수를 받았다.

 

송년행사에 참가해 후보자의 연설을 관심있게 지켜보던 오비나(31· 나이지리아)씨는 “이주노동자는 언제나 힘든 3D업종에서만 일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가 한국인과 결혼하지 않고도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며 그것은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원에서 문을 연 지 7년 된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의 우삼열 실장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포함해 경남 창원지역에만 약 3만 명 정도의 이주노동자들이 생활하고 있다"며 "대부분 수출을 하는 소규모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적별로는 러시아나 우즈베키스탄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많으며, 그 외에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도 있다고 전했다. 상담소는 앞으로 임금체불 등 인권지원 뿐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의 시민권과 참정권 문제들도 함께 고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거 후보자로 나섰던 이해미니씨는 "시민들에게 직접 선거유인물을 나눠주며 대화해 보니 큰 공부가 되었고 값진 경험을 했다"며 "앞으로 전국 단위의 이주노동자 조직을 꾸려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높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시아 문화와의 만남’에 참석해“이주노동자 선거유세 퍼포먼스를 인상깊게 보았다"는 민주노동당 경남도당의 문상형 대표는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인 민주노동당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이주노동자를 비례대표로 가장 먼저 내세워야하지 않겠냐"는 퍼포먼스 기획자 박경주씨의 질문에 "당 차원에서 고용허가제를 노동허가제로 바꾸고, 연수생 제도를 폐지하는 기본 방향을 정해서 내국인과 같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 비례대표 후보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퍼포먼스 기획자 박경주(36·문화활동가)씨는 "앞으로 '민주주의의 고향' 광주의 금남로에서 이주노동자 선거유세 퍼포먼스를 벌여 시민들을 만나는 것으로 퍼포먼스의 긴 여정이 끝난다"며 시민들의 인터뷰를 정리한 영상메시지를 민주노동당 등 각 정당에 배포하여 "이주노동자들의 참정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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